수자기, 내로남불? "비교말라" 불쾌
수자기가 제주 국제 관함식 논란으로 떠올랐다. 일본의 주장에 여론은 비교할 대상조차 안된다며 불쾌해하고 잇다.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수자기의 게양을 문제삼은 것은 일본 현지 언론들이다. 12일 NHK 등 일본 현지 언론들은 수자기를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NHK는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한 일출봉함에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탔던 배에 걸렸던 조선수군 대장기의 디자인을 재현한 깃발을 내걸었다고 지적하면서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한국 해군이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싸운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깃발을 내건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은 관함식에서 한국이 항일의 상징으로 영웅시 되는 이순신 장군 깃발을 게양한 것은 국기 이외의 깃발을 게양하지 말라는 요구와 모순됐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국제 관함식에 앞서 외교부는 일본에 욱일기 게양을 하지 말라는 요구를 내놨던 터다.
외교부는 해상사열 때만이라도 욱일기 대신 자국기를 게양해달라고 요구했고 우익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진 바 있다. 급기야 일본은 국적을 표시하는 자위함기는 국가 주권의 상징이기 때문에 한국의 이같은 요구를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하며 불참을 통보했었다.
[출처] 이투데이: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673337#csidx27b6e8feebbb712b34f40b49eb41e7c
어재연 장군과 수자기
1823(순조 23)∼1871(고종 8). 조선 후기의 무장.
내용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 용인(用仁)의 아들이다. 1841년(헌종 7) 무과에 급제, 공충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66년 프랑스 로즈(Roze,P.G.)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였을 때[병인양요]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廣城鎭)을 수비하였다.
이어 회령부사가 되어 북쪽 변경지방의 비적을 토벌, 치안을 확보하였다. 또한 이 때 장시(場市)를 개설하는 등 변경 무역을 활성화하였다. 1871년 미국 아시아함대의 강화도 내침으로 신미양요가 발생하였다.
6월 1일 손돌목[孫乭項]포격사건이 발생해, 한미간에 최초의 군사충돌이 일어났다. 이를 보고하자 진무중군(鎭撫中軍)에 임명되어 광성보(廣城堡)로 급파되어 6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광성보에 부임, 미군과 대치하였다.
6월 10일 미군은 강화도상륙작전을 전개, 초지진(草芝鎭)을 점거하였다. 6월 11일 덕진진(德津鎭)을 함락한 미군은, 마지막으로 광성보공략에 나섰다. 이 때 광성보에 수자기(帥字旗)를 게양하고 침공해 오는 미군을 격퇴할 태세를 취하였다.
미군은 광성보에 대한 수륙양면작전을 개시해서, 해상에서는 함포사격, 지상에서는 야포사격으로 초토화작전을 전개하였다. 드디어 광성보로 돌입한 미군과 어재연군 사이에는 육박전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는 임전무퇴의 결의로 칼을 손에 잡고 적을 무찔렀고, 대포알 10여 개를 양손에 쥐고 적군에 던져 항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지삼군부사(兵曹判書知三軍府事)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